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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죄를 자백해야 죄사함이 유효한가? 요한일서 1장 9절

죄사함
죄사함

시편 32:5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셀라)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들어가며...

평안하시죠? annaga입니다.

성경에는 '예수를 믿으면 죄 사함을 받는다'는 말도 있고 '죄를 자백하면 죄 사함을 받는다'는 말도 있습니다.

오늘은 구원론과 일상 속에서의 자백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 그리고 죄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신도의 신앙 여정에 대해서 이야기해 봅니다.


본론

1. 우리가 이미 죄사함을죄 사함을 받았다면 왜 계속적으로 자백을 해서 죄 사함을 받아야 하는가?

 

성경에 따르면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사도행전 2:38에 따라 각 사람은 죄 사함을 받게 된다.

즉 예수를 구주로 믿으면 구원을 받는데, 왜 요일 1:9에서는 늘 죄를 자백해야 죄 사함을 받는다고 하는 것일까?

 

여기에 대해서 많은 목사들은 구원을 받는 죄사함과 일상에서 회개를 해야 얻는 죄 사함을 다르다고 한다.

즉 한번 받은 죄사함은 흔들림이 없이 영원한 것이고, 단 생활 속에서 죄를 자백하고 멀리하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원해지고 징계를 받게 된다고 한다.

 

뭐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주장에는 인간의 이기심이 담겨져 있어서 악취가 진동을 한다.

즉 이기적인 크리스찬과 교회의 교리는 '한 번 주를 영접을 했다고 교회에서 확인을 받은 자는 천국 가는 데는 이상이 없다.'는 것을 보장하려고 애쓴다.

그리고 그후에 생겨난 신도의 죄를 어떻게 합리화할 것인지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와 교리는 순전히 신도들과 교단의 입장을 공고히 하고 그들의 심리적인 안전에 주력을 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뜻을 모시는 것은 아니다.

 

'구원론'이라는 것은 인간들이 성경에서 천국을 갈 수 있는 요건들을 찾아 정리해서 그것들을 만족시키면 천국에 간다고 하나님께 따져 물으려고 만든 인간위주의 추론이다.

마치 대학입학에 필요한 스펙과 성적이 있듯이 천국의 이민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 위주의 책이지 인간위주의 책이 아니다. 구원도 일방적인 하나님 위주의 선물인 것이지 인간이 요구하고 하나님께 책임과 배상을 요구할 것은 아니다.

인간이 만든 모든 구원론은 쓰레기통에 들어가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 하나님과 우리를 가로 막는 유일한 것은 바로 '죄'다.

 

사람의 죄 때문에 그 사람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멀어진다. 가족으로부터 혹은 친구로부터 멀어지고, 어떤 경우는 사회로부터 격리되기까지 한다.

그러나 죄의 가장 큰 패단은 그 죄인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다는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자는 모든 창조물로부터 멀어지고 절대적인 버림을 받게 된다. 

처음 신도가 죄 사함을 받을 때 바로 이런 사실을 깨닫고 회개를 하게 되는데, 이와 같은 회개는 늘 지속되게 되어있다. 왜냐면 신도가 육체를 떠나지 않는 한 온갖 죄는 다시 살아나서 올라오기 때문이다.

마치 병자가 자기의 병에 잘 듣는 약을 사용하는 것에 익숙한 것 처럼,

신자는 처음 믿을 때 성공한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에 늘 그 방법을 애용해서 병을 이긴다.

이것이 십자가가 마음에 새겨진 자들의 죄에 대한 당연한 반응이다.

 

이런 이유로 죄가 해결되지 않고 있으면 하나님과 연결이 안 되고 영적으로 괴롭고 두려운 병적인 상태에 놓여 있기에 자연스럽게 신자는 죄를 주께 내여 놓고 치료를 받는다.

여기에 '한번 구원은 영원한 것이고, 생활 속에 구원은 징계를 피하는 것이고...' 하는 따위에 헛된 철학이 끼어들 공간은 없다.

 

3.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다 아시는 분인데 왜 굳이 자백을 해야 할까?

 

어떤 신도가 괴로운 와중에 기도를 할 때 "하나님 제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다 아시죠? 아멘.."하고 끝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브라함이 이삭에 칼을 들이대지 않아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다 헤아리실 수 있는 분이다.

그런데 왜 하나님 앞에서의 어떤 행위가 필요할까?

우리는 그 답을 영원히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즉 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영역 밖의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신자의 믿음을 행위로 표현하는 것을 기뻐하시며 받으신다는 것이다.

정말이지 기도와 자백과 세례와 같은 행위들은 신을 부르는 성스러운 것이다. 

또한 신도도 아무런 자백 없이 무릎을 꿇고 명상을 하는 것보다는 소리 내어 자백하는 것이 훨씬 영적으로 스스로를 충만하게 만든다는 것을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게 된다.


마치며...

죄를 소상하게 아뤄면 늘 들어줄 준비가 되어있다고 하시고 용서할 준비가 되었다고 하시는 분이 너무 고맙지 않습니까?

그분께 맡기면 우리는 안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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