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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0장 선한 사마리인의 비유, 진짜 이웃은 누구인가?

선한-사마리아인
선한 사마이라인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0장 29~37


서론

어느 율법사가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믿지 않고 시험하고자 '천국 가는 계명'을 물어봅니다. 왜냐면 그리스도라면 당연히 천국가는 방법을 알려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질문에 예수님은 '이웃을 사랑하라'라고 하십니다.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을 줄 알았는데 너무 당연한 말씀을 하시니 율법사는 아마 싱거웠을 겁니다.

여기에 율법사는 이웃이 누구인지 가르쳐주면 사랑하겠노라고 답을 합니다.

"아무나 이웃이면 다 사랑하면 되는 것인가요?"라고 묻는 것이나 다름이 없겠죠?

하지만 예수님은 무늬만 이웃이면 안 되고 진정한 이웃이어야 하며, 너도 진짜 이웃이 되고 다른 자도 진짜 이웃이 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진짜 이웃은 상처받고 죽어가는 이웃을 외면하지 않는 이웃입니다.

 

본론

1. 선한 사마리아인은 누구인가?

문장 그대로 보자면, 누가복음 10장에서 사마리아인은 '자비를 베푼 자'입니다. 예수께서 사마리아인을 '이웃'이라고 하시고 너도( 이웃을 사랑하라에서 이웃이 누구냐는 질문을 한 율법사)도 사마리아인처럼 자비를 베풀라고 하셨습니다.

교회에서는 선한 사마리아인을 예수님이라고 가르치는 곳이 많습니다. 물론 고난에 빠진 자를 불쌍히 여겨서 구원하는 모습을 보면 딱 이분은 예수님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이웃이기도 하고, 구원자이기도 합니다. 맞습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0장에서 이웃이자 구원자십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에서는 사랑을 하는 이웃과 사랑을 받는 이웃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웃끼리는 서로 사랑하라라는 말씀이 적용되므로 서로 사랑을 주고받습니다.

 

2. 제사장과 율법사는 왜 강도를 만난 예루살렘 사람을 구하지 않았을까?

제사장과 율법사는 유대교의 교리로 죽어가는 자를 만지는 것이 부정하다고 판단을 해서 강도 만난 자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는 율법사가 뜨끔 했겠죠?

성경에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큰 계명이 있으나, 성경에 기반을 두었다고 주장을 하는 유대교의 교리는 죽어가는 자를 구하지 마라고 하는 것이죠.

 

3. 사마라아인은 왜 강도 만난 자를 구했을까?

여기서는 왜라는 질문이 더 어색합니다. 사마리아인은 교리도 없거니와 교리와는 상관없이 죽어가는 자가 불쌍해서 구한 것입니다.

더군다나 예루살렘에서 내려가는 자는 유대인일 가능성이 높지만, 그의 옷은 벗겨지고 피투성이가 되어있어서 그가 유대인인지 사마리아인 인지도 구별하기도 힘든 상황이죠.

 

4. 주막은 어디인가?

사마리아인은 강도 만난 자를 치료하고 주막에 맞깁니다. 사마리아인은 여행 중이었고 다시 들를 거라고 하는 것으로 봐서 사마리아인이 여행 중에 가끔 묵어가는 주막인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사마리아인은 강도 만나 자의 숙박비를 선불로 주고, 만일 더 비용이 들면 여행 중에 다시 올 때 그것까지 갚겠다고 합니다.

주막은 세상에서 상처받은 자가 예수님의 손길에 이끌려와서 그분이 다시 오실 때까지 쉬는 곳입니다.

지금으로 보면 교회가 바로 주막입니다.

이렇게 보면 주막인 교회의 역할이 지대하지만, 사실 교회는 상처받은 자들을 위한 거처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가 성도보다 우선되는 경향은 지양되어야 마땅합니다.

 

5. 주막 주인은 누구인가?

지금으로 비유하자면 주막의 주인은 교회의 목사나 장로가 될 것입니다.

목사나 장로는 성도들을 보살피고 위로하는 직책이 주어진 사람들이니까요.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것이 사마리아인은 주막 주인에게 철저하게 계산적이라는 것입니다.

즉 그들의 실비를 정확하게 변제한다는 사마리아인의 의지가 보이니까 말입니다.

따라서 목사나 장로들은 교회를 잘 지키며 불쌍한 성도들을 보살피는 역할에 따라서 타당한 보수를 받을 것입니다.

자칫 직분에 우쭐해서 성도들 위에 굴림하면서 성도들을 부러 먹으면 나중에 사마리아인에게서 꾸중을 들을 것이 분명합니다.

평범하기만 한 성도들은 주막지기인 그들의 vip 고객이니까요.

 

결론 

누가복음 10장의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서로 사랑하라의 의미가 무엇인가? 서로 사랑하지 못하게 막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인간을 불쌍히 여기셔서 사랑하시고, 상처받은 사람들끼리 그런 사랑을 본받아서 서로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명이자 그분을 기쁘게 하는 일인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사람이 만들어 놓은 교회의 교리들은 하나님의 명령보다 더 우위에 있고자 하는 세력들에 편승해서 늘 불쌍한 자들을 외면합니다.

단언컨대 교회 내에서 높고자 하는 자들은 그들이 교회에서 작은 자들을 돌본 삭은 받되, 더 이상은 기대를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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