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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는 왜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순교했을까? 요 21장 

베드로의-십자가
베드로의 십자가

요한복음 21장 18~19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들어가며

필자는 베드로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다는 것이 처음에는 기괴한 죽음이요, 저주받은 죽음이라고 생각했다. 왜냐면 주님이 돌아가신 십자가에 반대로 매달렸기 때문이다. 아주 단순한 생각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얼마지나지 않아서 '거꾸로 매달림'은 성경과 주의 메시지나 태도에 일치한다는 점을 발견하였다. 

그렇다! 베드로는 그렇게 매달려야 합당하다.


 

요한복음 21장 살펴보기

베드로의 그러한 죽음은 마땅하다?

베드로의 십자가 죽음에 대해서는 전승에 있다고도 하고, 외전에 있다고도 한다.

뭐 어디에 있을지 모르지만 베드로 사도는 어떻게 죽고, 바울 사도는 어떻게 죽고... 이런 설교를 교회에서 들어본 적이 있다. 

그들의 죽음이 그들의 삶과 사명과 관련이 있다는 해설 말이다.

필자는 다른 사도는 모르겠지만, 베드로 사도는 그렇게 죽었다는 것이 이해가 된다. 그렇다면 그 전승이 일단 어느 정도 신빙성은 있다고 필자는 판단한다.

 

요한복음 21장의 내용 중 베드로의 죽음

성경에서 베드로의 죽음에 대해서 주님이 말씀하시는 내용이 유일하게 요한복음 21장 18~19에 나오는데 여기서 강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주님은 베드로가 전반기에는 자율적인 삶을 살지만, 후반기에는 남들에 의해 강제되는 삶을 살다가 죽는다고 하시고 이런 생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고 예언하신다. 

 

어떻게 억지로 끌려가는 삶을 사는 말년이, 또 그런 죽음이 축복이 될 수 있으랴?

이런 예언은 사랑받는 제자에게 퍼붓는 엉뚱한 저주와도 같다.

제자가 이를 받아드릴 수 있냐고 3번이나 물어보시고 어떻게 이런 독설을 하시고 받아들이라고 하시는 것일까? 그리고 그것이 왜 하나님께 영광인가?

 

교회의 사명과 베드로

요 21장은 처음에 제자들이 배로 낛시를 하는데 잘 되지 않다가, 예수님이 오른쪽으로 던지라고 하시고 그렇게 하였더니 고기를 많이 잡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고 했던 예언처럼 베드로는 전도를 통해서 성도를 받아들이는 조직 즉 '교회'를 맡는 사명을 받게 되는 것이다. 여기까지 대부분이 동의하는 정설에 가깝고 성경으로 증명도 되는 부분이다.

교회는 주에 대한 피끓는 사랑 없이는 짊어질 수 없는 것

주님은 "나를 정말 사랑한다면 이런 악역을 해줄 수 있느냐? 베드로야."라고 하신다.

교회는 악역이다.

주의 이름은 교회없이는 전파되지 않는다. 하지만 교회는 필요악이다. 교회는 성도를 위해 불살라지는 땔감과도 같은 것이다.

적어도 이땅에 세워지는 교회는 전도의 기능을 하면서 동시에 스스로 부패하기 마련이다.

교회에는 조직과 교리가 생길 수밖에 없는데 처음에는 이 것들이 싱싱하고 성스럽기까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성도들을 망가뜨리고 줄을 세우고 나중에는 그들은 머슴 부리 듯하는 괴물로 변한다.

여러분들이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면, 설교단에 서있는 목사를 보면 안다.

목사가 과연 좋은 직업인가? 축복받은 자리인가?

멀쩡한 성도도 직분이 지워지고 교회에서 한 자리하게 되면 목에 힘이 들어가고 다른 성도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게 된다.

하물며 담임목사는 권위가 없으면 교회 조직의 질서나 돈 관리가 안 되기 때문에 스스로 높임을 받으려 하게 되고 사람이 변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저주받은 직업이 교회의 목사인 것 같다.

목사는 항상 남들에게 하나님 앞에 순전하라고 훈계를 해야 한다. 자기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면서 말이다. 이보다 더한 극한 직업이 있을까?

 

그래도 주님은 교회를 지지하시고 먹여 살리신다.

조직이 시간이 지나면 썩는다는 것을 주님이 모르실 리가 없다. 하지만 주님은 교회의 순기능을 보신다. 

빌립보서 1장 16~18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증 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사도바울은 전도의 목적과 순수성은 잃었지만, 어찌 됐든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파하는 자들은 놔둬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렇다! 이것이 주의 교회 조직에 대한 마음이고 지혜이다.

200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교회 조직들은 저마다 많은 수의 신도들을 확보하려고 저렇게 열심히 아닌가?

이런 조직의 열심과 달려 나가는 힘... 이것을 주님은 응원하시고 지원하신다. 하지만 주님이 그 교회 조직 자체를 선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만일 이 땅의 조직 자체가 선할 수 있다면 따로 천국에 흠결 없는 교회를 두시고 성도들을 기다리실 필요가 없다.

 

신약을 보면, 심지어는 사도들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을 때도 초대교회는 빠른 속도로 부패하고 혐오스럽게 변질되었다.

하지만 순기능 때문에 여전히 주님은 조직을 축복하시고 지원하신다. 그러나 때가 이르면 모두 불살라질 것이고, 교회 내의 작은 자에게 양을 친다고 하는 자들이 어떻게 대했는지 반드시 심판을 하실 것이다.

 

교회의 수장인 베드로

이렇게 아비규환인 교회 조직의 수장이 되라는 것이 베드로의 사명이다. 베드로는 주님이 이 땅에 계실 때에도 수장 노릇을 했다. 하지만 주님이 가시고 짊어질 사명은, 반드시 베드로라는 인간됨 때문에 지워지거나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베드로뿐만 아니라 다른 사도들과 심지어는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도 자기 뜻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이끌림으로 자기도 모르게 성령의 삶을 사는 것이다.

악역이지만 이런 악역을 짊어질 운명인 베드로... 그를 교회의 초대 교주라고 한 가톨릭교회의 추대는 일응 설득력은 있는 것이다.

악역을 완수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고 영광이다.

이스라엘 민족을 끝까지 붙잡으려 했던 이집트의 파라오를 하나님께서 일부러 강퍅하게 하셨다는 성경을 읽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처음 성경을 읽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사람을 나쁘게 만드셨다는 것이 선뜻 이해가 잘 안 된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인간적인 판단을 넘어서 성령의 이끌림으로 오버해서 고집 세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를 이루려 하심이다. 하나님의 경륜이 이와 같다. 인간의 계획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분은 우리가 선하다고 하거나 악하다고 할 수가 없는 분이다. 선과 악이 있기도 전에 그분이 계셨기 때문이다.

 

아무튼 베드로는 성령의 이끌림으로 스스로 젊어서 교회 조직을 지을 것이고, 나중에는 사람들에게 추대되고 원하지 않는 자리에 오르게 되고 그가 지은 집은 흉한 몰골을 한 자들이 점령을 하게 될 것이다. 

"베드로야 네가 이럴 지라도 너의 악역을 수행할 수 있겠느냐? 네가 나를 진정 사랑한다면 말이다."

 

베드로는 요한과 같은 사명을 원했다.

요 21: 21~23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예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이러라

 

베드로는 말한다. "나는 조직을 짊어지고 그렇게 비참하게 죽습니다. 주님 근데 저 어린 제자는 무슨 복을 타고나서 천국을 보고 기록하는 상을 받습니까?"

사도 바울도 셋째 하늘을 봤다고 한다. 요한은 밧모섬에서 가장 선명하게 주님께서 천국을 열어서 보여주신다. 어느 제자든지 가장 맡고 싶은 사명은 바로 이런 것이다.

선지자들이 가장 사모하는 것은 돈도 아니고 조직도 아니고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도 아니다.

그들은 천국 계시를 원한다. 사도는, 선지자는 그것에 목숨을 건다.

 

하지만 베드로는 조직이란 무거운 짐을 지고 살다가 갔다.

 

그가 있었기에 조직이 있었고, 조직이 있었기에 나도 여러분들도 주님의 이름을 들었고 또 이렇게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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