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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고 하신 이유는?

이웃

intro

평안하시죠? annaga입니다.
교회다니는 사람은 누구나 들어보는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은 천국에 가는 열쇠로는 너무 평범해 보이지 않나요?
주위 사람들에게 선행을 베풀라는 말은 너무 당연해 보이고, 어느 종교나 다 하는 말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예수그리스도는 천국 가는 계명을 물어보면 꼭 이 말씀을 하시는군요.

아래의 제 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도 예수님은 율법사에게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라고 하셔서, 이 말씀은 여기에서의 '이웃'이 누구냐는 질문에 까지 이어집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아는 사람만 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아는 사람만 안다. 1. 인트로 평안하시죠? annaga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살펴볼게요. 이 비유는 개인적으로 예수님 비유 중에서 가장 난해한 비유라고 생각

ssambbang1.tistory.com

그럼 왜 이웃을 사랑하라고 강조하시는지, 그 숨은 뜻은 무엇인지 같이 알아보시죠?


1. 율법사에게 하신 대답

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그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태복음 22장 34~40)

바리새인 중에 율법사가 물어본 질문은 예수님이 들고 오신 '가장 큰 계명' 혹은 '율법'을 묻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면 인류를 구원하는 새로운 임팩트있는 메시지를 들고 오셨을 것이라는 생각이 던진 질의입니다.
사두개인들은 성경에 기록된 문자적인 계명 외에 다른 것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바리새인들은 그들만의 구전 율법도 중시했다고 하죠?
하지만 그의 기대와는 다르게, 예수님은 특이한 계명을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구약에 나오는 누구나 아는 계명을 상기시키십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

2. 레위기에 '이웃 사랑'

레위기 19:18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레위기에 먼저 '이웃 사랑'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19장 문맥 상에 별다른 영적인 뜻은 없어 보입니다.
그냥 애굽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회중에게 '공동체 생활을 해야하니까 싸우지말고 서로 잘 지내라'는 말로 보입니다.
즉 율법사가 물어보는 "당신이 그리스도라면 천국 가는 계명을 들고 왔을 텐데 그 계명은 과연 무엇입니까?"라는 물음에 대한 답으로는 왠지 맥이 빠지는 것이죠?
맞습니다.
여기에 예수님 말씀의 묘미가 있습니다.
아는 사람만 아는 바로 그것입니다.
이웃 사랑은 구약 시대에는 그냥 공동체가 지켜야 하는 생활 규범 정도의 의미입니다. 도둑질 하지말고 서로 싸우지 말고 등등...말이죠.
하지만 지금 신약 시대에는 천국 가는 진리가 그 속에 녹아있습니다.
참 신기하죠?
그 이유는 이웃 사랑이라는 말씀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대로 이지만, 시대와 환경이 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성경을 바로 믿는다'고 문맥 상으로만 해석을 하는 성경학자들은 진리를 알지 못하고 기권패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3. 신약에서 천국가는 계명인 이웃 사랑

갈라디아서 5:14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똑같은 '이웃 사랑'이 바울의 갈라디아서에도 등장합니다. 심지어 바울은 '이웃 사랑에 모든 율법이 다 녹아있다'고 합니다.
한편 갈라디아서 5장 14절 문맥은 레위기 19장과 별로 다를 것이 없어 보입니다.
즉 레위기가 막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공동체의 규범에 대한 것이라면,
갈라디아서 5장은 막 세워진 초대교회 내의 공동체 규범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구약 모세의 때는 율법이 태동을 한 시기입니다. 즉 모세의 십계명을 필두로 율법이 시작되는 것이죠? 그러므로 광야에서는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로서의 선포가 있고 그에 대항하는 회중이 애굽에서 가져온 다신교(ex 황금 송아지)가 대립이 되는 원시적인 형태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모세 때부터 시작한 신앙의 혼돈은, 구약시대에 선지자들이 쭉 이어져 오면서 신앙과 불신앙 사이의 대립 구도를 만들어내고, 많은 선지자들이 이 와중에 희생을 당합니다.
그리고 말라기 선지자를 마지막으로 선지자가 중심을 잡는 구약시대가 끝나자, 다신교에 뿌리를 둔 종교들이 이스라엘로 침투하게 되고 마침내 이스라엘 사회 안에서도 사두개나 바리새 같은 종교적인 파벌의 형태가 400년을 흐르는 동안 자리를 잡습니다.
그후에 마침내 지금 (마태복음 22장)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이런 변종들을 상대하고 계신 것입니다.

바울의 초대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의 교회가 광야교회와 다른 점은 초대교회 내에 여러 가지 구체적인 종교적인 내분이 있다는 점입니다.
유대종교 형제들과 로마, 그리스 종교에 영향을 받은 이방인 형제들이 모여든 교회.... 당연히 대립이 있습니다.
이런 대립과 갈등은 종교교리를 내려놓고 참된 신앙으로 회복이 되기 전에는 정리가 되지 않습니다.
바울은 유대인 형제들에게 말합니다.
"형제님들아 유대교는 율법을 지키면 천국에 간다고 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모든 율법을 내려놓고 이방인 형제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보면 사마리아인이 비록 이교도이지만 그는 교리와 상관없이 선한 마음으로 죽어가는 유대인을 구하지 않았습니까? 종교를 버리기 전에는 신앙도 하나님도 실패할 것입니다."

4. 천국 가는 길 :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참 다행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하나님을 얻은 후에 남은 생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다가 가야 합니다.
여러분들 중에는 교회에 안에 있는 분들도 있고, 믿은 후에 교회에서 나온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하나님이 맺어준 인연이 있을 겁니다. 즉 '같이 믿는 사람들' 말입니다.
교회 안에 계시던지, 밖에 계시던지 같이 믿었던 이웃이 여러분 주위에 아직 있을 겁니다.
그들은 사랑하십시오. 그들은 교회 조직이나 특정 교리 교단을 떠나서 여러분과 같은 '교회'이며 '이웃'입니다.

왜 예수님도 바울 사도도 "같은 교회 형제들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고 하지 않고 '이웃을 사랑하라'라고 하셨을까? 생각해보십시오.


교단이고 교리고 목사고 장로고... 다 필요 없으니 쓰레기처럼 다 버려버리고...
순수하게 하나님을 열망했던 평범한 사람이웃들이 아직 여러분 곁에 생활하고 있다면 그들을 아끼고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이것을 지키면 여러분은 안전하게 천국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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