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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은 왜 고난 받았고, 왜 회복되었는가?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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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tro

평안하시죠? annaga입니다.

 

여러분은 욥기를 읽으실 때 이해가 잘 되시는지요?

교회에서는 욥의 인내를 배우라는 설교를 많이 합니다.

신앙생활이 어려워도 욥처럼 참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으면 끝에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는 내용으로 말입니다.

뭐 모든 설교가 그렇듯이 좋은 교훈입니다.

 

그러나 이런 교훈이 과연 욥기의 메시지일까요?

욥은 왜 고난을 받고, 욥은 왜 회복이 되었으며, 욥이 이런 시련으로 얻은 것은 무엇이고, 우리가 얻을 것은 무엇일까요?


 

  • 목차
  1. 욥은 어떤 사람이었나? 착한 욥 목사
  2. 욥의 친구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3. 교리로는 알 수 없는 고난
  4. 고난을 받은 이유는?
  5. 욥과 세 친구의 다른 점
  6. 회복의 이유는?
  7.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

1. 욥은 어떤 사람이었나?

  • 욥은 의인이다. 좋은 사람이다.

욥은 의인이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자라고 성경이 말합니다.

욥이 의롭다고 표현한 것은, 하나님의 의를 충족시키는 의인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10:3

욥기 1 1절의 '의롭다'는 뜻은 사람이 진실하고, 주위 사람들한테 선행을 베푼다.는 뜻입니다. 

즉 복음에서 다루는 죄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는 점은 유의해야 합니다. 

  • 욥은 성경 교사이다.

또한 욥은 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성경에 조예가 깊고,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성경을 가르치는 성경교사입니.  42:3

 

  • 욥은 지금의 착한 목사님이다.

이런 욥을 지금 시대에는 누구와 같다고 해야 할까요??

하나님을 섬기고, 거짓말하지 않고, 선행을 베푸는 어느 교회의 착한 목사님이 있다면 바로 욥과 똑같은 인물일 것입니다. 

 

2. 욥의 친구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세 친구는 같은 교단의 목사들입니다.

욥기서에는 이 세 친구와 욥 사이에 오고 간 각각 세 번의 긴 논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들의 토론의 중심에는 '하나님께서 통치하시고 지배하시는 이 세계에서 의인이 고난을 받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그들의 철학과 교리가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착한 사람에게 복을 주시고, 나쁜 사람에게 벌을 주시는 분이다. 는 당연하고 그럴듯한 교리입니다.

그러므로 착한 목사가 고난을 받는 것은 자신이 저지른 죄 값으로 받는 고난의 형벌이라는 것입니다.

급기야는 세 친구들은 착한 목사에게 "이제 그만 연기하고 빨리 뭘 잘못했는지 생각해보고 실토하라."라고, 병원에까지 심방 와서 강요하고 있습니다.

 

3. 그들의 교리로는 해결이 안 되는 욥의 고난

만일 욥 목사도 스스로가 고난에 들지 않았다면, 그도 친구들과 같은 주장을 했을 것입니다.

욥 목사는 "자기는 결백하고 죄가 없다."라고 강경하게 주장하면서 "세 목사들의 주장이 옳지 않다."라고 반박합니다..

그렇습니다. 여기서 세 목사와 욥 목사가 의견이 달라집니다. 

해당 교단의 교리로 해결이 안 되는 사안에 부딪힌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고난을 주셨기 때문에 시작된 놀라운 일이고, 

욥 목사가 바로 그 당사자이기 때문에 스스로 의심의 여지없이 교리가 무너졌다고 선언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는 이제 "하나님께 직접 대답을 듣겠다."라고 절규합니다.

욥 목사는 하나님만이 교리로 해결이 안 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4. 고난의 진짜 이유 

  • 교사에서 선지자로

그렇다면 하나님을 신실히 믿고 사랑하는 ‘욥 목사는 왜 갑자기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는 많은 끔찍한 고난을 받게 된 것일까요?

답은 하나님이 ‘욥 목사를 사랑하셔서 선지자로 쓰기 위해서 연단하시는 것입니다.

성경 교사는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주변 지식으로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선지자는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듣지 못하고서는 어떤 예언도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착한 목사를 교사에서 선지자로 승격해서 쓰시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 고난이 필요한 이유

그런데 승격에 하필 혹독한 고난이 필요한 이유는 뭘까요?

답은 승격에 한 가지 걸림돌을 치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교단의 교리입니다.

욥은 착하고 좋은 사람이고 하나님을 사랑했지만, 그는 교리를 들고 있는 종교인이었습니다.

종교인들은 그들의 교리를 하나님의 뜻보다도 중시 여깁니다.

  • 선지자를 핍박하는 종교인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예수님 앞에서 자신의 교리를 들먹이면서 오히려 예수님을 가르치려 들었던 율법사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또 자신들의 교칙에 맞지 않다고 예수님에게 참람되다는 표현을 써가면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야 한다고 외쳤던 종교인들을 기억하실 겁니다.

  • 종교인에서 선지자로

종교인들은 그들의 교리를 버리고, 하나님을 직면하는 용기 없이는 선지자가 될 수 없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욥 목사에게 고난을 주시고 그 고난이 교리로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

이런 상황에서 욥은 하나님께로 직접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5. 하나님은 부족한 욥을 불쌍히 여기신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욥 목사와 세 친구 목사에게 서로 다른 평가를 내리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  하나님의 임재의 두려움

이때에 하나님은 욥 목사에게 직접 나타나시어 대답하여 주셨습니다(38:1 이하).

즉 하나님은 전능하시며 우주의 통치자 시라는 것을 욥에게 깨우쳐 주시고 동시에 인간의 무력함과 무지함을 알려 주셨습니다.

여기에서, 욥 목사는 하나님과 자신이 직접적으로 맞닥뜨리는 것에 한계를 느끼며 두려워합니다.

자신의 문제 해결을 위해, 하나님을 직접 뵙기를 원했지만, 막상 하나님의 임재가 무섭기만 한 것입니다.

  •  욥 목사 교회의 부흥

욥 목사는 평소에 하나님 앞에서 신도들의 대표로 기도를 했고, 마치 하나님의 뜻 다 아는 것처럼 설교시간에 성경을 펼쳐서 해석을 하고 강연을 해왔습니다.

사실 최근에 욥 목사의 교회 신도들은 개척한 이후에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그의 행동이 선하고,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는 마음이 전해져서, 다른 교회 목사들에게 실망한 자들까지 몰려들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욥 목사 교회는 이 동네에서 가장 부유한 교회가 되었고, 전도도 많이 했습니다.

교단 총회에서도 이와 같은 부흥을 성령의 임재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까지 칭송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 욥의 양심의 거리낌

그러나 욥 목사는 이렇게 좋은 분위기에도 알 수 없는 뭔가가 아쉬웠습니다.

교회 신도들은 늘 “욥 목사님 말이 하나님의 뜻이니 순종을 해야 한다.”라고.” 믿었지만,

욥 목사는 자기 신앙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알지만 정작 하나님 몰랐던 것입니다. 

늘 주여! 주여! 주여!라고 외쳤지만, 정작 주를 만나보지 못한 것이다. 그는 마태복음 7장의 위선자인 것입니다.

그는 귀로 듣고, 소문으로 듣고, 주석서를 보고 연구하고, 교리도 달달 외웠지만, 하나님의 계획을 계시받은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42:3,42:5

대부분 종교가 들은 선지자가 아니므로, 먼발치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으로도 만족합니다.  36:25

하지만 착한 목사는 주를 만나기 위해 장기간을 기도원에서 보내기도 했습니다.

 한 때는 금식기도 중에 간절히 소원하던 중에, 기도 응답을 받은 적도 있다. 하지만 그마저 너무 두려워서 물러나서 주님 만나기를 포기했습니다.  7:14,15,16

  • 하나님은 욥의 마음을 이해하신다. 그리고 그를 사랑하신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욥 목사의 이 모든 삶의 과정을 지켜보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비록 불완전하지만 종교조직 안에서 늘 한편으로 주 앞에 나아가기를 사모하는 그를, 하나님은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반면에 겉으로는 똑같아 보이지만, 교단 교리에 안주해서 꿈쩍도 하지 않으려는 다른 세 친구 목사들에게 주신 책망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42:7,8

 

6. 욥의 회복

마지막으로 욥 목사가 받은 선물은 과연 무엇이며,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42:1~6

<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주께서는 무소불능하시오며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우는 자가 누구니이까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여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

 

  • 하나님은 욥 목사에게 ‘무슨 경영’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앞으로 있을 일을 계시해 주셨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다시는 어리석은 교리나 헛된 철학으로 이 계획을 가리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 하나님의 선물

하나님이 선지자에게 주는 선물은 경제적인 부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며, 건강도, 행복한 가정도 아닙니다.

욥 목사는 늘 교회에서 이와 같은 것을 축복한다고 기도를 해왔고, 자신도 그런 복을 받기를 은근히 소원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따위는 종교인들이나 그의 신봉자들이 구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신령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고난으로 연단되어 앞에 나아온 욥 목사에게 선지자가 되어야 받을 수 있는 상을 주신 것이다.

비천한 종교인에게 이보다 더 큰 은혜와 축복이 있을 수 있을까요?

요한복음 3장의 니고데모도 이런 상을 받기 위해서 밤중에 용기를 내어 주님을 찾아뵙고 질의를 했습니다.

이제야 욥 목사는 종교인의 위선에서 벗어나 주께 들은 것을 증거하고 선포하는 당당한 선지자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로 인해, 그의 영혼과 양심이 종교조직에서 진정 자유롭게 된 것입니다.  8:32

 

7.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

주를 멀리서 바라보며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도 상이요, 복이 지만,

면전에서 주의 얼굴을 보는 선지자들의 큰 상만큼이야 하겠습니까?

모세도 바울도 다른 모든 선지자들도, 늘 주의 임재를 사모하여, 자신의 육체의 고난에는 한 점 관심조차 두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멀리서 방관자처럼 주님에 대해서만 듣는 것에 만족하십니까? 

아니면 주의 얼굴을 가까이서 직접 보는 것을 간절히 원하십니까?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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