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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리함의 믿음과 모세의 율법/ 갈라디아서 3장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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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평안하시죠? annaga입니다.

 

율법과 믿음.... 말 만 들어도 복잡할 것 같고, 머리가 아픈 주제입니다.

하지만 두 개념은 갈라디아교회에서 벌어진 사소한 갈등을 해결하려고 사도 바울이 끌어다가 사용했습니다.하지만 후에 철학자들이나 신학자들이 이를 관념적인 것으로 보고 논하면서 문제를 키웠습니다.

율법과 믿음의 갈등은 지금도교회 내에서 벌어지는 일상적인 문제일 뿐입니다.

이게 무슨 말인지 갈라디아서 3장을 중심으로 한 번 같이 알아보시죠?

 

1. 관련 성구

갈라디아서 3장 10절~14절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2. 갈라디아 교회 내의 갈등의 원인

초대교회에는 한 울타리에 유대인과 이방인이 섞여서 신앙생활을 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둘 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의 생활 방식은 너무나도 달라서 교회 내에서 서로 자주 부딪히는 일이 많았을 것입니다.

한편, 갈라디아서 2장을 보면 베드로가 이방인 성도들과 식사를 하다가, 유대인 성도들의 눈치를 보고 그 식사자리를 피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것은 유대교리에 이방인과 식사를 하면 안 된다는 규칙이 있어서 생긴 문제로 보입니다.

이 일로 미루어보아 갈라디아 교회 내에서는 아방인 성도들과 유대인 성도들이 따로 식사를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초대교회는 같이 숙식을 하고 생활하는 공동체이기에 이런 갈등은 더욱 심화되었을 것입니다.

특히 유대인 형제들은 이방인 형제들을 멸시하는 경향을 보였을 겁니다.

 

3. 아브라함의 믿음과 모세의 율법

갈라디아서에 등장하는 '율법'은 이방인과 따로 식사하기, 유대인의 절기를 지키기 등 유대교 교칙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백번 양보해서 유대교의 교리가 모세오경에서 파생되었다고 하더라도,

모세의 율법이 모세 이전에 아브라함에게 주신 믿음의 약속을 앞서지 못한다고 역설을 합니다.

 

사실 아브라함은 유대인이란 개념이 생기기 전의 인물입니다. 

또한 아브라함은 사우디 아라비아 인근에서 우상은 제작하던 집안의 후손입니다. 

가나안 지역을 중심으로 보면 그도 이방인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서 계시를 받고, 그 계시를 믿고 인생을 살아내며,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한편 율법은 아브라함으로부터 430년 후에 광야에서 모세 공동체의 경거망동을 제어하기 위해서 지어졌습니다.

 

즉 아브라함의 믿음이 먼저이고 본질이며, 모세 율법은 나중이고 본질이 아니고 죄를 막기 위한 궁여지책과 같은 성격이 있어 보입니다.

필자는 앞서 '백번 양보해서'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그 의미는 갈라디아 교회에서 정작 문제가 된 '율법'은 모세오경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4. 교인들 간의 갈등

사도 바울이 유대인 형제들을 존중해서 점잖게 표현한 것뿐입니다.

그들을 너무 자극하지 않으려고 자존심을 조금 세워준 것입니다.

즉 실제적으로는 손 씻는 방법 순서, 먹는 음식 종류, 옷차림 등 형식적인 종교 관습 때문에 서로 부딪치고 문제가 된 것입니다.

이런 관습으로 형제들끼리 타툼이 있는 것을 개탄한 것이 갈라디아서입니다.

 

지금도 같은 개신교도라고 하더라도 침례교인과 장로교인과 성결교인들을 섞어놓으면 문제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예수를 주라고 시인하는데는 서로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갈등은 예배방식, 기도하는 규칙, 장로들이 교회 예산을 집행하는 방법, 임원을 등용하는 기준 등에서 나올 것입니다.

갈라디아교회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5. 율법은 주로 유대교 교리를 일컫는 말

사도 바울이 율법이라고 표현한 대부분은 실질적으로 '유대교의 교리' 일컫는 말입니다.

즉 구약에서 파생되었던 수많은 잡 규정들은. 겉모습은 마치 성경의 모양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종교인들이 합의해서 제작한  사람의 교리에 불과한 것들입니다.

지금 세상에서도 사이비 이단들이 성경에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을 하면서,

해괴망측한 교리를 만들어서 그것을 지키라고 신도들을 억압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예수님에게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느냐고 물었던 율법사를 기억하십니까?

그는 유대교 교리의 구원론을 감히 예수님에게 가르치려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종교 교리는 인간의 영적 눈을 멀게 하고 교만하게 만드는 성질이 있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아는 사람만 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아는 사람만 안다. 1. 인트로 안 목사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살펴볼게요. 이 비유는 개인적으로 예수님 비유 중에서 가장 난해한 비유라고 생각합니다. 그

ssambbang1.tistory.com


6. 어찌 됐든 율법보다는 믿음이 더 귀한 개념은 맞다.


그럼 수많은 쓰레기 교리의 조상이 된 율법은 가장 큰 쓰레기 더미일까요?

아닙니다, 율법도 좋은 것이고 하나님이 동의하신 것입니다.

율법은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의 죄를 제어하기 위해서 중보자인 모세에 의해서 지어졌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9절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하므로 더하여진 것이라 천사들을 통하여 한 중보자의 손으로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율법은 믿음보다는 왠지 그 거룩함이 떨어집니다.

소극적, 부정적인 이유가 그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믿음은 적극적 긍정적인 이유로 출발을 합니다.

즉 모세의 율법은 죄를 범법을 막으려고 지어졌으나. 아브라함의 믿음은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려고 약속으로 주신 것입니다.

 

7. 죄를 이기는 능력

모세의 율법은 공동체의 유지에 어느 정도 기여했지만, 그들의 범죄를 멈추게하지는 못했습니다.

그 때문에 모세와 모세의 무리는 요단을 건너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죄를 이기는 유일한 방법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죄를 이길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즉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믿으면, 인간은 선한 하나님의 품성으로 감화되고 변화를 일으키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함으로 죄를 이기는 것,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입니다.

<로마서 7장에서 8장으로 넘어오는 내용이죠?>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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